노인의 눈물

 

철이 들고부터 몇 번이나 울었을까? 젊어서는 나도 곧잘 울었다. 영화의 이별장면에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린 일이 있었다. 이를테면 톨스토이의 원작 『부활』. 황막한 시베리아 벌판, 해동기에 어느 나루터. 여자는 유형지로 떠나고 남자는 뒤에 남는다.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럴 것이 이 청년 귀족은 여성을 농락한 것을 깊이 뉘우치고 여자의 뒤를 따르려 한다. 한데 여자는 아기를 안은 채 한사코 말린다. 여자의 심성에 감루하였던 것이다.

프랑스 흑백영화 「망향(뻬뻬 르 모꼬)」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와, 어두운 밤거리에서 눈물을 훔쳤다. 알지에 항구, 사나이(쟁 개방 扮)는 철책 이쪽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떠나는 선상의 여인(크래타 까르보 扮)을 미친 듯이 찾는다. 여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갑판 위를 서성거리다가 사나이와 시선이 마주친다. 사나이는 뒷골목에서 동지의 손에 피살되었다고 형사에게 들었는데…. 남녀의 시선이 엉킨 채 멀어져 간다. 사나이는 숨겨 두었던 손칼을 뽑아 가슴을 찌른다. 철책을 쥐었던 두 손이 풀리면서 몸은 서서히 무너진다. 이 장면을 지켜보았을 때 나의 가슴은 납덩어리를 삼킨 듯 답답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어지간한 이별의 현장을 보아도 덤덤해졌다. 눈물도 젊어서 말이지 연극이나 영화의 극적 장면을 보아도 뜨거운 눈물은 배어나오지 않았다.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 가슴이 답답해질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 처음 당하는 친상이었으니 눈물보가 터질 법도 한데 상주가 맹숭맹숭하였으니 일가친척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울고 싶을 때 눈물 안 나오는 것도 딱한 일이다.

그런데 먼 친척뻘 되는 아낙이 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처음에는 흐느끼는가 하였는데 두 어깨가 들먹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호곡(號哭)으로 변했다. 호곡은 한참 계속되었다. 이 호곡이 나의 누선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얼핏 자리를 떴다.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 마음놓고 울었다. 실컷 울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장례가 끝나고 이 아낙의 호곡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슬피 울다니…. 나는 그 울음의 원천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과는 일찍이 헤어지고 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었던 것이다. 맺혔던 한이 빈소에서 머리를 조아린 순간, 복받쳐 올라온 것일 게다.

사십구재를 마치고 어느 날, 아내가 아버님 옷장을 열어보고 와 보라고 한다. 그때가 늦은봄이었는데 갈아입을 여름옷은 물론 가을, 겨울옷까지도 말끔히 손질하고 양말도 차곡차곡 포개놓은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부친상을 치르고나니 눈물 지을 일이 좀처럼 없을 것 같아 나의 삶도 그만큼 허전해지는 것 같았다. 덧없이 나이만 포개다 보니 어느새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슨 행사가 그렇게도 많았던지. 그럴 때마다 중, 고 학생들이 시가행진에 끌려 나갔다. 검은 제복의 학생들이 줄을 지어 발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면 왠지 눈물이 나온다고 한 여류작가가 말했다. 그분에겐 혹시 그 나이 또래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학생들의 행진을 보면 별 까닭없이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그 작가의 미묘한 감루(感淚) 동기를 막연히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중년 주부는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한 장면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 장면이란 카지노의 처녀 여사장이 폭력배들 협박을 받고 신변이 위태로워지자 그녀의 보디가드가 감연 뛰어들어 그들을 상대로 싸우다가 숨을 거두는 장면이었다. 과연 감동적 장면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같은 장면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연극이고 남의 일이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분당 아름마을에는 매송초등학교가 있다. 나는 어쩌다 두 살짜리 손자의 손목을 잡고 산책에 나섰다. 운동장 갓길에서 발을 멈추었다. 운동장에는 고만고만한 꼬마들이 뒤엉켜 놀고 있었다. 전 같으면 별 관심도 없이 지나쳤을 터인데, 그 뛰노는 꼬마들이 대견스럽다. 손자가 취학하자면 아직도 몇 해 앞일이다. 그때면 내 나이는 몇 살이 되는가….

가을 대 운동회가 열렸는데 나에게도 초청장이 왔다. 학교 발전을 위한 자문위원회가 있는데 내가 그 위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손자가 취학하고 있으면 초청에 응해 본부석에 끼여들어가겠지만 아직은 두 살짜리 얼굴을 내밀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손자는 어느새 익혔는지 "학꼬 학꼬"하며 내 손을 잡아끈다. 그날도 손을 잡고 운동장 밖에서 지켜보았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단거리 경주이다. 먼 발치로 보니 흰 콩알만한 꼬마들이 스타트 라인에 한 줄로 섰다. 출발자세도 제멋대로이지만 뛸 각오는 단단히 돼 있어 보였다. '땅'하는 소리와 함께 꼬마들은 일제히 튀어나왔다. 그 뛰는 모습부터가 가련하여 나의 눈시울이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꼬마가 발이 엉켰던지 대굴대굴 굴렀다. 그 구르는 모습이 더없이 애처로워 어느새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넘어진 꼬마는 다시 일어섰다. 일그러진 얼굴,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그래도 끝까지 완주하였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 질러 울 뻔 했다.

할아비의 눈물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손자놈은 내 손을 뿌리치더니 저도 덩달아 뛴다. 가을 하늘은 더없이 맑은데 내 시야는 뿌옇게 안개가 낀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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