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수염을 한번 길러 보았으면…. 그런 생각을 품어본 일은 없었다. 별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젊었을 때는 젊었으니 그랬고, 나이가 들어서는 나이보다 늙어 보일까 해서이다.

요즘 젊은이 가운데는 콧수염을 기른 친구가 더러 있는데 눈꼴 사납다고 생각하는 노인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수제자가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는데 - 설마 박사학위의 징표로 삼을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 코밑에 수북이 수염을 달고 옛 스승 앞에 나타난 것이다. 노스승은 그날부터 우울해지기 시작하였다. 약속대로 자기의 강좌를 물려주고 자신은 물러나려 하였는데, 그 콧수염이 마음에 걸려 노교수는 강당을 떠나지 못했다.

하루는 제자를 불러 마음 모질게 먹고 수염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수염 깎게!"

제자는 아무 대꾸도 없이 씁쓸한 얼굴로 돌아갔다. 노교수는 속으로 이제는 그 콧수염을 깨끗이 밀어버리고 옛제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 그렇게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제자는 옛 스승의 간절한 소망을 콧수염으로 덮어버리기나 한 듯 여전히 선선한 얼굴로 강당에 서곤 하였던 것이다.

노교수는 원래 수염의 숱이 적은 데다, 이제는 나이에 밀려 빠지고 바래고 했지만 아침마다 면도를 대는지 가까이 보아도 횐 털오라기 하나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의 결벽성이 이러하였으니 제자의 콧수염으로 해서 심중에 화기가 일 법도 한 일이다. 그 후 노교수는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 재작년 일이다. 주위 사람들은 심화병(心火病)이었을 것이라고 그럴 듯한 풀이를 하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수염과 사람 팔자'라고나 할, 좀 거창한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첫 사람은 '유수피화(有鬚避禍)'라 하였다. 난중 수염 기른 덕으로 징병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그러면 평화기에 유수(有鬚)면 어떤 덕을 보는 것일까? 철학자나 예술인 그리고 무슨 도술인(道術人) 같은 자유인은 모를까, 관청의 계장이 수염을 고집하면 권고사직감으로 볼 것이다. 웃사람 앞에선 - 웃사람이 유수(有鬚)인 경우를 제외하곤 - 역시 무수(無鬚)가 도리인 듯싶다. 이것이 한국의 모랄이다.

철학자나 예술인, 도술인이라 하더라도 수염을 무슨 권위의 징표로 삼으려 하면 역시 눈꼴 사납게 비치는가 싶다. '철학자를 만드는 것은 수염이 아니다'라고 영국의 저명한 성직자 토마스 풀러가 일찍이 갈파한 바 있다. 그의 사진을 찾아보니 예상대로 역시 수염은 없었다. 또 이런 말도 있다.

'만일 수염을 기르므로 무슨 지혜가 떠오른다고 생각하면 염소도 플라톤이 될 수 있다(루키안).'

그런데 그 염소는 지혜는커녕 수염 때문에 슬퍼진다고 한 사람이 있다. '수염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나는 수염을 길러본 일이 없다. 두발은 더부룩한 채 빗질도 별로 안하지만 수염은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깎는다.

전기면도로 애벌을 밀고 남은 털은 안전면도로 깎는다. 스킨로션을 턱으로부터 목덜미까지 TV의 화장품 광고쟁이 탤런트같이 비비고 문지르고 나면 그 향긋한 냄새로 해서 나의 아침은 행복하다.

저녁 파티에 나서기 전, 신사라면 또 한번 깎고 문지르고 해야 할 것이다. 숙녀와 맞춤을 추다 뺨이 서로 닿거나 턱으로 이마를 스치거나 하면 그것만으로도 실례가 될 터인데 갓 돋은 고슴도치 털로 비벼서는 안될 것이다.

영국 신사의 첫조건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경우이고 수염만은 깨끗이 미는 일이다. 아침저녁으로 수염을 깍지 않으려면 아주 길러야 한다. 그 양쪽에 두 다리 걸치고 그 중간을 택하면 두 진용이 합세해서 공격할 것이다. 이 경우에만은 '중용'은 통하지 않는다.

2차대전 때, 영국군 한 소부대가 몰살당한 일이 있었다. 시체 가운데 수염이 돋아난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전투중이라 하더라도 매일 한번씩 수염을 깍도록 부대장은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수염에 얽힌 미담이다.

나는 이발소 의자에 누우면 눈을 감고 면도사에게 운명을 내맡긴다. 불안은 조금도 없다. 섬세한 손에 쥐인 시퍼런 칼날은 털깃같이 사뿐히 내려와 살갗을 스친다. 귓바퀴 홈진 곳, 그 미묘한 선을 따라 솜털 하나 남기지 않는다. 이럴 때 나는 '천사의 손'을 연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나폴리에 갔을 때, 처음 찾아간 대학 골목 안 이발소는 영 사정이 달랐다. 의자는 두 개뿐이었다. 중늙은이 주인이 가위와 빗을 들고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대강대강 머리를 치더니 대기하던 면도사에게 넘긴다.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 면도사는 가죽띠에다 칼을 쓱쓱 문지르더니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다가왔다. 이제와서 그만두라 할 수도 없어 하는 대로 맡겨두었지만, 그 거친 손길을 꾹 참으려니 눈에는 물이 고이고….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나도 수염을 길러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곳에선 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두 사람에 한 명꼴로 수염을 기른다. 신입생 가운데는 쿠바의 카스트로 같은 수염도 있었다. 담장 기어올라 가듯 힘차게 뻗어 올라가는 수염이다. 영화에서 본 네로 왕 같은 턱수염도 있었다. 북구 남성의 누렇게 바랜 수염이 아니고 모두 검고 탐스러운 수염들이다. 이런 얼굴들 앞에 서니 나의 민짜 얼굴을 가지곤 교수의 위신이 설 것 같지 않았다. 콧수염을 기르기로 작심한 것이다.

볼과 턱은 면도로 밀고 코밑은 가위로 다듬고 하였다. 숱이 많지 않은지라 폴란드의 자유노조 위원장 바웬사의 위엄을 따를 수는 없지만 가위로 웃입술의 선을 따라 가지런히 다듬으며 삼면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한 세대 전, 크라크 케이블의 콧수염을 아주 닮지 않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신통한 일은 두발과는 달리 흰털이 거의 없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발보다 한 20년 후에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두발에는 어느새 서리가 내렸지만 수염은 아직 인생의 조락을 생각하기엔 너무나 이르다고 확신을 주었다.

해가 바뀌고 5월 들어, 아내를 맞으러 로마 레오날 도 다빈치 공항에 나갔다. 7개월 만에 만나는 재회였다. 아내는 물끄러미 내 코밑을 보곤 별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와서 수염 기른 남자들을 많이 보니 아내의 안목도 높아져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결론은 역시 깎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기를 수염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나의 콧수염의 수난은 한국에 돌아와서부터이다. 만나는 친구마다 한마디씩 수염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그런 눈치가 보이면 이쪽에서 먼저 꺼내기도 하였다. 허물없는 여자교수에게 '수염을 기르니 성적 매력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성'자는 빼고 '매력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없다' 쪽으로 들린다.

가을에 접어들어 소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내 수염도 쓸쓸해 보였다.

어느 날 아내와 생선가게에 들러 흥정하는 도중, 주인아주머니는 아내를 '아주머니'라고 부르고나서 나보고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날로 깨끗이 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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