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의 경연 시대

 

 나를 보고 센스가 둔하다고 한다. 요즈음 같은 스피드시대에 그렇게 센스가 둔해서야 쓰겠느냐는 것이다.

한 때 별명까지 붙여서 말하는 친구들은 나를 보고 형광등이라고도 한다. 백열등처럼 스윗치 만 넣으면 바로 켜지는 것이 아니라 몇 번씩 깜박깜박하고서야 불이 켜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벼운 저항을 느낀다. 설사 한 두 번쯤 더 깜박이더라도 백열등보다 더 밝고 요금이 싼 형광등 쪽이 낫지 않느냐고….

따라서 나는 센스가 둔하다는 말에는 별로 수치감을 갖지 않는다. 원래 내 성격이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편이고, 또 모험보다는 평범한 안전을 바라는 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센스 빠른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부러워해 본 적이 없다. "절에 가서도 눈치가 빨라야 새우 젖 국물을 얻어먹는다" 라든지 "담 넘어서 툭하면 호박 떨어진 줄 알아라"는 유의 속담보다는 오히려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두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더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센스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미묘한 느낌이나 판단력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감각능력을 전제로 하는 말이지, 결코 초고속의 눈치판단만을 앞세워 아무렇게나 오판을 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말의 본래의미가 자꾸만 변질되다보니 정확보다는 속도 면에 더 치중하는 것 같고, 아울러 자기의 센스에 대해 지나치게 과신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독선과 아집과 불신과 증오가 범람하게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윤리적인 도덕률(道德律)보다는 경쟁적인 적자생존률(適者生存律)을 앞세워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것 같다. 또한 일상의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이해나 설득을 위한 노력보다는 센스로 통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조직상의 상하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윗사람은 구체적인 지시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 아랫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랫사람으로서는 그저 눈짓 손짓만 보고 마구 뛸 수밖에...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온통 센스의 경연장이 되고 만 느낌이다. 대학 입시 때부터 눈치작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또한 일상에서 상대방의 심중을 헤아리는데도 그렇다.자기 나름의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을재단하여, 함부로 악인의 낙인을 찍어 버리고는 단절의 벽을 높이 쌓아 올린다. 그야말로 아집과 독선으로 절해고도(絶海孤島)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빗나간 센스의 경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사태를 유발시켜 놓고도 별로 개의치 않는 사람을 볼 때에는 적잖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어느 심리학자가 제시한 통계를 보면, 센스의 평균 적중율(適中率)은 백 분의 일밖에 안 된다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99퍼센트는 오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뭇 사람들이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는 센스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거의가 오버센스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쯤 되면 오히려 센스가 무디어 지도록 훈련해야 할 판이 아니겠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파리 한 마리가 황소의 주변에서 놀다가 그 소의 뿔 위에 올라앉았다. 그 때 약간 미안한 생각을 갖게 된 파리는 소에게 말하기를 "잠시 뿔 위에서 쉬었다 갈 테니 이해하고, 무겁거든 언제든지 알려주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는 파리가 뿔 위에 앉아 있는지 조차 몰랐던 것이다. 자기분수도 모르던 파리는 너무나 자기를 과대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의 고사 중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조조가 역신 동탁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하여 진궁이란 자와 함께 도피 길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마침 자기 부친의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잠결에 들으니 부엌에서 칼 가는 소리와 함께 "이놈을 먼저 잡을까, 저놈을 먼저 잡을까..."하고 소곤소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동안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눈치로만 살아온 조조는 틀림없이 자기를 죽이려는 줄로만 알고 수하와 더불어 선수를 써서 그 일가를 몰살시키고 말았다. 그러고 난한 후 후원을 둘러보니, 돼지 두 마리가 꿀꿀거리면서 묶여 있더라는 것이다. 조조와 같은 한 시대의 영웅도 자기를 극진히 대접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는 은인(恩人)을, 오히려 살의를 품은 적대자로 착각하여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자기의 센스를 과신하게 되면 저렇듯 과대망상에 빠져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찌 인생의 중대사를 처리함에 있어 강아지가 주인이 던지는 공을 물어 나르듯이 그렇게 가벼운 "센스"로만 처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센스는 어디까지나 개연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민한 센스에 도취되기보다는 그 어떤 문제든지 논리적인 사고과정을 거쳐 사리의 진위를 올바르게 판별하는 지적 훈련에 더 힘써야 할 것이다. 정치나 사업이나 그 밖의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이러한 지적(知的) 판단에 기초하지 않은 결정은 반드시 절절한 후회를 낳게 된다는 것도 깊이 새겨두어야 하겠다. 그리하여 건전한 지적 판단 위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어 나간다면 결코 센스의 경연 따위엔 휘말려들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닌가.

 cement_up.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