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월, 겨울이라면 뭣하고 봄이라기엔 아직 이른 어중간한 계절이다. 산골짜기 깊은 음지엔 잔설이 희끗하고 얼음이 두터워 아직 깊은 겨울인데 먼 하늘은 어느새 봄기운이 연하게 감돌고 있다.

  주말에 산에 올랐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은 시려도 솔잎에 맴도는 솔바랍 소리가 겨울과 달리 한층 맑고 부드러워 졌다. 그러나 흰 눈꽃을 피웠던 한겨울 설경과는 또 다르다. 앙상한 가지만을 하늘로 삐쭉 뻗치고 멋없이 서 있는 나목(裸木)이 겨울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그럼에도 꼭 집어 말할수 없는, 혼자서 감춰두고 싶도록 깊숙히 빨려드는 그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빈가지, 스산한 골짜기 그리고 차고 메마른 바위벽, 그 어디에도 그럴만한 게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은근히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기하학적으로 아무리 완벽한 용모를 갖추고 태어났어도 선하지 못한 마음을 담고 있다면 겉모양만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오래 지탱할 수 없다.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조각가 이면서 화가였고 또 뛰어난 해부학자이기도 했다. 뼈의 구조와 근육의 분포를 올바로 알지 못하고서는 육체미를 생동감 있게 조각할 수 없고 붓끝으로 그려낼 수도 없다. 단지 겉을 싸고 있는 피부만으로는 진정한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부는 겉싸개에 불과한 것, 형상을 이루고 있는 속뼈대, 근육의 정확한 배치와 굴곡을 구도로 잡고 나면 외모는 그에 따라 힘들이지 않고 완성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잎 떨군 빈가지, 골짜기를 훤히 드러내 놓고 있는 적막공산(寂寞空山), 백설까지도 차내던진 알몸, 그같은 형상을 보고 있으면 인체의 뼈대에서 균형된 몸매를 파악할 수 있는것처럼 자연의 해부학적인 구성의 미를 느낄수 있다.

  거기엔 겉덮개가 씌워지지 않은 본래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훤히 드러나 있다. 잎과 꽃들이 가득 피어나고 뭇새들이 고운 목청을 돋울 때 우리는 환상적인 경계에 흥겨워 하다가도 철이 바뀌어 잎이 다 떨어지고 바윗돌이 거칠하게 드러나면 들뜬 감정은 가라앉고 허허로이 텅빈 가슴으로 허무한 삶의 비애를 맛본다.

  비로소 마음은 차분해지고 자연의 실상이 눈앞에 밝게 드러나 있음을 본다. 노경(老境)과 같은 원숙하고 달관된 깊은 아름다움에 빨려들게 되는 것이다. 봄의 연두빛 신록에서 가을 단풍까지는 치장한 여인에 비할 수 있을지라도 저 노인의 깊고 우아한 경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욕망을 털어버리고 가볍고 투명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인생의 황혼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누릴수 있는 시기이며 그럴 권리가 충분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 해서 누구나 저절로 이같은 경지에 들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육신을 순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못다한 욕망에 전전긍긍할 때 늙음은 고통이고 아쉬움이며 결국 추하게 시들어 가는 처참한 신세밖에 안될 것이다.

  노인 톨스토이의 얼굴을 볼때마다 나는 얼핏 늙은 우랑우탕의 흉하고 동정을 구하는듯한 슬픈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다가도 움푹 박힌 눈빛을 타고 흘러나오는 진리에 대한 강렬한 정열과 인류를 향한 깊고 따뜻한 연민의 정을 느끼는 순간, 문득 거룩한 성자의 모습을 발경하는 것이다.안으로 감추어진 아름다움이 겉으로 번지면서 그 빛을 온몸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올 때 얼음 녹아 흐르는 산도랑 물소리를 맑게 들었다. 파란 하늘에 목화송이 같은 구름이 몇조각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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