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진 호수 가에서

 

  추석이 며칠 지난 요즈음, 뜰 앞 나무들이 무척 힘겨워 하고 있다. 그렇게 푸르던 잎에 흰 반점이 생기면서 까칠한 모습이다. 자연의 순환에는 어쩔수 없는가, 머잖아 가지는 힘없이 잎을 떨구고 앙상한 채로 추운 겨울을 맞을 것이다.  

  휴일, 아침에 산에 다녀오고서도 저녁때가 되면 방안에 있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버릇이 있다. 평소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병자 처럼 이상하게도 어둠이 내리는 황혼무렵에는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대개 농대 수목림을 한바퀴 돌거나 서호천가에서 왔다갔다 한다.  

  오늘은 서호방죽으로 나갔다. 오늘 따라 저녁놀이 유난히도 가슴을 파고든다. 차마 바라보기 싫도록 처절한 빛깔이다. 그 빛깔이 슬픈듯 너무도 가슴을 뒤흔든다. 고통인지 기쁨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극히 행복해지려 한다. 어린아이처럼 순하디 순해지려 한다. 쓰잘데 없는 생각들이 쓰레기 치워지듯 뒷전으로 밀려버리고 가슴이 깨끗이 비워지면서 선하디 선한 감정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하늘과 이 대지가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가 속으로 거듭 뇌까렸다. 그렇다. 저녁놀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 아침을 거쳐 낮을 지나오는 가운데 터득한 달관의 노회철학을 저녁놀은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때만큼은 느긋해진다. 인생이란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고 아옹다옹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의 서광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라면 저녁놀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겪은 노인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녁놀은 인간의 욕망은 다 부질없는 것이라며 저으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노인의 표정과 너무 닮았다. 훤히 밝아오는 새벽빛에는 삶은 영원하며 불가능은 없다는 의기 양양한 젊음의 패기가 있지만 그러나 저녁놀에 대하면 설익은 빛깔이다. 저녁놀은 모든것은 내리막과 끝이 있으며 인생 역시 그렇게 발버둥쳐 보았자 결국에는 늙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진리를 말해주면서 진정한 삶의 행복이란 그렇게 화려하거나 악착스런데 있지 않고 단순하고 너그러운데에서 얻어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상쾌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감촉과 유유히 흐르는 냇물가에 드리운 주변의 경치를 고요히 음미하기를 좋아하며 남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함으로써 '다투려 하지 않으니 그와 다툴자 없다'는 노장철학이 저녁놀에는 깊게 깔려 있다. 사실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싸움을 하려고 달려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르면 모르되 도전적인 사람은 저녁놀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저녁놀은 아무래도 노인이 좋아할 빛깔이다. 노인은 지나온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삶의 행복이 지극히 소극적인 평화와 고요로움에 있음을 안다. 이런 면에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의 행복관은 노인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정신적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거의 하나같이 조용한 삶을 바라는 것, 자연에 묻혀 홀로의 삶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사색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저녁놀이 호수에 비쳐 어둠에 싸여있는 주변의 산과 들과 묘한 빛의 조화를 보이고 있다. 환히 드러나 보이는 낮보다도 어둠에 가려진 광경들이 더 눈을 잡아끄는 무엇이 있다. 그속에 많은 것들을 감춰놓고 있는 것만 같아 보이는 것이다. 꽉 차있는 것보다는 여백이 있음으로써 채워진 그림이 한층 돋보이듯 저녁놀은 어둠을 깔아 시각적으로 상상의 여지를 더해주고 있다.

  나는 지금도 가끔 텔레비젼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텔레비젼이 나오기 이전에 귀로 듣던 라디오연속극이 더 재미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는 공간적으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라디오는 극중 배경이나 인물 등에 대해서 청취자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무한정 펼칠수 있다. 히트한 영화를 책으로 내어 베스트 셀러가 된 예는 간혹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동양의 최대 베스트 셀러인 삼국지를 영화로 보았을때 책으로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영화는 아무리 해도 그 많은 독자의 상상을 다 수용할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방대한 배경도 문제이려니와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머리속으로 영화에서는 그려내지 못하는 그 이상의 극적인 상상을 펼치는 것이다.  

  달밝은 밤 달을 쳐다보면서 동화속을 거닐때가 좋다. 저멀리 아슴푸레한 연경(煙景)을 이만치서 바라보면서 심미적인 즐거움을 빠질떄 인간은 행복하다. 다가가 봐야 귀찮은 안개와 쇠똥, 갖은 쓰레기에 실망할 뿐이다.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 연극이나 시와 소설을 보고 삶이란 아름다운 것이로구나 하지, 실생활에서 그만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갖고 싶고 보고 싶어 안달하던 것도 손에 쥐어지거나 눈에 드는 순간 만족할 틈도 없이 또다른 것을 찾아 나선다.

  그러니까 행복을 유지하려면 항상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살짝 보여줄듯 감추는 맛이 있어야 한다. 오솔길이 곧게 확 뚫린 고속도로 보다 더 정감스러운 것처럼 행복의 원리도 이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저녁놀이 바로 이런 맛을 준다. 소쩍새가 어스름한 숲 어딘가에서 울고 풀벌레 울움이 엷은 어둠을 타고 울어댈때 저녁놀은 하늘의 비밀보따리를 풀어 지상에 살그머니 쏟아 놓는다. 노을진 저녁 한때 조용히 휴식에 들려는 대지는 그래서 적요한듯 달콤한 신비에 감싸인다. 저녁놀이 번지는 이때만큼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 어떤 예술작품이나 사상도 노을이 주는 감동보다 깊고 가슴을 채워줄만한 것이 있을것 같지가 않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들으면 싫어할는지 모르겠으나 생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 나는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몰라도 저녁놀을 가슴에 안고 영원의 세계로 들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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