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주 (韓炯周)

 

           

Ⅰ. 약력

1928년  함경남도 신창에서 의사(醫師) 한병만(韓秉萬)과 이시돌(李時突)의 3남2녀 중 2남으로 태어나다.

1934년  신고산(新高山)유치원에 다님.

1935년  신고산소학교에 입학.

1936년  함남 이원군 차호(遮湖)소학교 2학년에 전학.

1938년  함흥(咸興) 금정(錦町)공립소학교 4학년에 전학. 공의(公醫)로 전근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 3개 소학교를 전전함.

1940년  금정소학교 6학년 때 전교생을 망라한 아동극 의 주인공이 되어 함경남도를 대표하는 아동극으로 각광받음.

1941년  함남공립중학교(咸興高普) 입학.

1943년  일제(日帝) 말기 학생들의 수업은 소홀히 하고, 근로봉사(勤勞奉仕)라는 사역에 동원되던 시절, 선덕(宣德)비행장에서 우리 나라 애국가를 부르고 그로 인하여 함흥도청의 고등계(高等係)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사상이 불온한 조선학생으로 낙인찍힘.

1945년  광복되던 해 3월에 함남중학교 4학년 졸업.

1945년 함흥 신흥정공립소학교 촉탁교사. 18세의 앳된 선생님이 되어 4학년을 담임함. 4학년 다른 반의 동갑내기 여선생과 플라토닉러브.

1945년  8·15광복을 맞아 학생들에게 한글과 애국가를 깨우쳐주고 10월에 교사 사직. 부모형제들과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에서 상봉키로 언약하고 단신 월남.

194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과에 입학. 어렵게 마련한 입학등록금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붐비는 전차 타고 학교 등록창구에 가니, 그 돈은 깨끗이 소매치기하고 없었다. 촌놈이 서울의 매정한 맛을 처음 뼈저리게 겪음.

194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부 진입학. 그로부터 가정교사, 자취, 하숙생활 등 고된 고학생활이 시작됨.

1949년  타고난 신바람을 가눌 길 없어 서울대학교 연극부원이 되어 대학연극제에 출연. 「인조인간」의 헬미엘 박사역을 맡음. 또 대학연극경연대회에 「베니스의 상인」의 젊은 사관 밧사니오역으로 시공관(市公館)무대에 서다. 당시 중앙대학 연극부는 최무룡 학생이 이끌었다. 서울 치과대학의 박암 씨와 함께 공연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 시절의 서울대 연극부의 감독은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김기영 감독으로 김감독은 당시 서울대 의대 4년생으로 나의 2년 선배였다. 그의 부인은 서울대 치대 출신이며 「베니스의 상인」 공연 때 포샤공주역.

1950년  6·25 전쟁을 의대 학부 3학년 때 겪음. 가정교사하던 집 식구를 따라 양수리 근방의 돌섬에 피난 가다.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가는 모교 서울대학병원을 따라 새로 창설된 36육군병원 기간요원으로 입대. 군에서 숙식을 하고 전시연합대학에서 나머지 의과대학과정을 이수함.

1952년  4월 서울의대 학부 졸업.

1952년  9월 육군 군의관 중위 임관(군번 215614). 그후 6·25 종군.

1955년 4월 11일 숙명여대 출신인 김명희(金明姬)와 3년간 연애 끝에 결혼.

1960년  2월 육군에서 만기제대.

1060년  10월 서울 동대문구에 개인병원 개설. 서울대 대학원에 등록.

1961년  12월 장녀 유미(由美) 탄생.

1962년  3월 서울대 의대 외래강사.

1962년  10월 우석의대(현 고려대의대) 시간강사.

1963년  서울의대 풍토병연구소 운영위원.

196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 받음.

1965년  서울의대 외래조교수.

1966년  박득순(朴得錞) 화백에게 서양화수업.

1967년  서울대 의대 외래부교수.

1968년  제주도 서귀포에 「서울대학교 풍토병 연구소」를 사비로 설립.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임대.

1971년 3월 우리 나라 최초의 낚시 월간지 『낚시春秋』 창간 발행인(현재 고문).

1977년  서울의대 외래교수.

1977년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1979년  한국문인협회 회원.

1980년  미국을 시작으로 그후 매년 약30일간 해외여행.

1981년  수필문우회 회원.

1986년  한국낚시진흥회 회장(현재 명예회장).

1992년  재단법인 심경문화재단(心耕文化財團) 이사.

1999년  2001년까지 3년간 계간 『隨筆』 표지화 그림.

2001년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공동대표.

 

Ⅱ. 저서

  수필집

  『魚信을 기다리며』(1976) 공저

  『八字섬의 메뚜기』(1978)

  『한형주의 붕어낚시』(1978)

  『사랑과 미움의 歲月』(1988)

  『물 같이 바람 같이』(1997)

 

 Ⅲ.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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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가을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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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바다 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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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낚시

 

 Ⅳ. 자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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